자가발효증후군(ABS)이란 무엇인가
자가발효증후군(Auto-Brewery Syndrome, ABS)은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체내에서 알코올이 생성되어 취한 것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희귀 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주로 장내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에탄올을 과도하게 생성하면서 발생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장에서도 소량의 에탄올이 만들어지지만, 간에서 빠르게 분해되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ABS 환자의 경우 에탄올 생성량이 간의 대사 능력을 초과해 혈중 알코올 농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어지럼증, 발음 장애, 판단력 저하, 만성 피로,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심한 경우 음주운전 오해, 직장 내 불이익,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ABS는 19세기 후반 처음 보고됐지만 사례가 극히 적어 오랫동안 명확한 원인과 치료법이 규명되지 못했습니다.

기존 연구에서 밝혀진 ABS의 단서
초기에는 장내 곰팡이가 탄수화물을 발효해 알코올을 만든다는 가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박테리아, 특히 특정 장내세균이 에탄올 생성의 주범일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2019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중 일부 균주가 높은 에탄올 생성 능력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 연구는 ABS가 단순한 희귀 질환이 아니라, 장내미생물의 에탄올 생산 능력이 극단적으로 증가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눈에 띄는 증상이 없더라도 장내에서 생성된 에탄올이 지방간과 같은 간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고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 연구, 원인균을 구체화하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의 베른트 슈나블 교수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엘리자베스 호만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역대 최대 규모의 ABS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2024년 1월 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에 게재됐습니다.
연구팀은 ABS 환자 22명과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 구성원 21명을 대조군으로 설정했습니다. 식습관과 생활 환경이 유사한 집단을 비교함으로써 장내미생물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ABS 환자의 장에서 발견된 특징적 변화
연구 결과 ABS 환자의 대변 샘플을 배양했을 때 에탄올이 생성됐으나, 대조군에서는 거의 생성되지 않았습니다. ABS 환자들은 간 손상을 나타내는 효소 수치가 높았고, 일부 환자에서는 간경변증으로 인한 흉터도 관찰됐습니다.
장내미생물 분석 결과, 기존 원인균으로 지목됐던 폐렴간균이 ABS 환자에게서 현저히 많이 발견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기존에는 주요 원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대장균(Escherichia coli)의 수도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 균주는 혼합산 발효, 이종젖산 발효 등 에탄올 생성과 직결된 대사 경로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치료 가능성을 보여준 대변 미생물군 이식(FMT)
연구팀은 ABS 환자 한 명에게 건강한 기증자의 대변 미생물군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을 반복적으로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혈중 알코올 수치와 증상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습니다. 이는 ABS의 핵심 원인이 장내미생물에 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임상 증거로 평가됐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FMT를 만능 치료법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슈나블 교수는 FMT를 '망치 같은 치료법'이라고 표현하며, 장내미생물 전체를 바꾸는 방식보다 에탄올 생성에 관여하는 특정 대사 경로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치료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BS 연구가 던지는 의미
이번 연구는 ABS가 단순한 미스터리 질환이 아니라, 장내미생물 생태계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대사 질환일 가능성을 명확히 했습니다. 동시에 무증상 상태에서도 장내 에탄올 생성이 간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에게도 시사점을 던집니다.
아직 ABS가 왜 특정 사람에게서만 발생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발병이 촉발되는지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인균과 대사 경로가 구체화된 만큼, 맞춤형 치료와 조기 진단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출처
- 동아사이언스, 「술 안 마셔도 취하는 ‘자가발효증후군’, 원인균 찾았다」
https://www.dongascience.com/ko/news/75913 - Schnabl B. et al., Nature Microbiology, 2024
- UC San Diego School of Medicine 공식 연구 발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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